1세대 실손을 유지해온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설계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5세대 실손이 출시되니 갈아타는 걸 고려해보라는 얘기였다.
보험료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말에 솔깃해 내용을 들여다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도수치료 보장은 빠지고 자기부담률은 두 배로 뛰어 있었다. 11월에는 3년간 보험료를 반값에 해준다는 제도가 생긴다는데, 기한이 6개월뿐이라고 했다. 보험료가 저렴해지는 건 알겠는데 보장이 줄어든 상품으로 서둘러 갈아타는 게 맞는 건지 선뜻 결정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5세대 실손보험이 6일 본격 출시됐다. 금융당국은 저렴한 보험료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지만, 새 상품 소식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이번 개편이 과연 소비자 편익을 위한 조치인지, 보험사 논리에 당국이 휘둘린 건지 선뜻 판단이 되지 않아서다.
5세대 실손은 비급여 보장을 중증과 비중증으로 나눠 차등화한 것이 핵심이다. 도수치료·체외충격파 등 비중증 비급여 항목은 보장에서 빠지거나 자기부담률이 50%로 높아졌다. 보험료가 낮아진 만큼 보장도 그만큼 줄어든 게 특징이다.
금융당국은 5세대 실손에 가입하면 기존 대비 보험료가 30~50% 저렴해질 것이라 말한다. 비급여 과잉진료로 손해율이 치솟고 보험료 부담이 커지면서 제도 개편이 불가피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그간 높은 손해율로 보험료 부담을 겪어온 소비자들의 짐이 덜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새 상품을 내놓은 것만으로 소비자 편익이 증대할지는 다른 문제다. 그간 보험사들이 끼워팔기로 손해율 일부를 보전해온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실손 단독 손해율만을 개편 근거로 삼는 것이 온당한지부터 짚어야 한다.
실손보험은 오랫동안 종신보험·암보험 등 주계약에 특약 형태로 묶여 팔렸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주계약 보험료 수익을 함께 챙기면서 실손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일부 완충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현재 보험사들이 내세우는 실손 손해율에는 이 주계약에서 챙긴 수익이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이번 5세대 실손 출시 과정에서 보험업계가 해당 상품을 다시 특약 형태로 출시해달라고 건의했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구세대 실손 대부분이 특약 형태로 팔린 상황에서 단독 실손 손해율만 놓고 보험료 인상 요인을 따지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사실상 보험사 논리를 그대로 인용해 이뤄진 개편이라는 시각을 쉽게 씻을 수 없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보험사 편을 든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수지상등의 원칙'(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출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보험금 지출이 줄면 보험료도 낮아질 테니, 보험사 이익과는 무관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왜곡된 손해율 산정 구조를 손보지 않은 채 내놓은 논리가 소비자를 향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개편으로 실손 가입자 상당수는 선택지 없이 보장 폭이 좁아지는 상황을 맞게 된다. 2013년 이후 가입자는 재가입 주기가 도래하면 5세대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들의 실손 보장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층 복잡해진 상품 구조도 문제다. 5세대 실손은 기본계약에 중증 비급여 특약, 비중증 비급여 특약을 선택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인데, 보험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가 자신의 의료 이용 패턴에 맞게 최적의 조합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상품이 정교해질수록 불완전판매 가능성도 커진다는 건 당국과 보험업계 스스로도 잘 아는 사실이다. 복잡한 상품 구조를 제대로 이해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메우는 상품이다. 약 4000만명이 가입한 국민의 사적 의료안전망이다. 실생활과 밀접한 보장을 덜어내 얻은 '반값 보험료'가 과연 소비자 편익을 위한 건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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