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이지영 기자] 금융권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통해 사외이사진 재편을 마무리했다. 이번 주총에서 4대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법률, 금융소비자보호, 인공지능(AI) 등 전문성을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내부통제 강화 기조가 맞물리면서, 단순한 인적 교체를 넘어 이사회 역량 자체를 보강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다만 그동안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 온 학계 편중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반의 변화'에 그쳤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문성 강화 뚜렷…법률·소비자·AI 강화
우선 전문성 측면에서는 변화가 분명하다. KB금융지주는 서정호 변호사를 선임하며 법률 전문성을 보강했고, 하나금융지주·KB국민은행 등은 소비자보호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했다. 신한금융지주의 박종복 신임 사외이사 역시 기존 금융·경영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로 전문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우리금융지주는 AI 전문가 류정혜 신임 사외이사를 영입하며 디지털·기술 역량을 강화했다.
금융사별로 보면 이번 인선의 방향성은 비교적 명확하다. 법률, 소비자보호, 디지털·AI 등 세 축으로 수렴되는 모습이다.
KB금융은 법률 전문성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된 서정호 변호사는 국세청,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이력을 바탕으로 규제 대응 역량을 보강할 적임자로 평가된다. KB국민은행 역시 금융소비자보호 전문가 연태훈 연구위원을 영입하며 소비자 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신한금융은 CEO 출신 금융 전문가와 회계 전문가를 동시에 보강했다. 박종복 사외이사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리테일·PB 경쟁력 강화를, 임승연 사외이사는 내부통제와 감사 기능 강화를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한은행도 법률 전문가와 물리학 기반 ICT 전문가를 동시에 영입하며 이사회 기능의 균형을 맞췄다. 특히 양자역학 전문가 채은미 사외이사를 통해 디지털·ICT 전략 수립과 신사업 분석 등 이사회 전문성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소비자보호와 AI에 무게를 뒀다. 하나금융은 소비자학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사회 구성을 재편했고, 우리금융은 금융소비자보호 전문가와 AI 전문가를 동시에 영입하며 디지털 전환 대응에 나섰다. 우리금융은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주주총회로 확대하는 정관 개정까지 병행하며 지배구조 개선 의지도 강조했다.
◆여성 확대 흐름 주춤…지주사별 격차 확대
여성 사외이사 확대는 이번 개편에서 가장 엇갈린 지점이다. 금융권 전반적으로 보면 증가 흐름이 이어지는 듯 보였으나 이번 인선을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소폭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주별 격차가 뚜렷하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9명 중 4명이 여성 사외이사로 체제를 유지하거나 확대했다. 특히 하나금융은 이번 인사로 여성 사외이사를 1명 더 늘리며 여성 비율을 끌어올린 유일한 사례가 됐다.
반면 KB금융은 여성 이사 1명이 퇴임하고 남성 인사가 신규 선임되면서 여성 사외이사가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여성 이사회 의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구성 비율 측면에서는 후퇴한 모습이다. 우리금융 역시 기존 2명이던 여성 사외이사가 1명으로 감소하며 4대 금융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결국 일부 지주는 성별 다양성을 유지하거나 개선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확대 흐름이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고 지주사 간 편차만 확대된 것으로 해석된다.
학계 편중 문제 역시 이번 개편에서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KB금융은 교수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낮아졌다고 설명했지만 동시에 여전히 42%로 이사회 내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금융 역시 재선임 대상 상당수가 교수 출신으로 구성돼 있어 학계 의존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결국 신규 선임에서는 실무형 인사를 확대하면서도 재선임을 통해 기존 학계 인사를 유지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외형적 변화와 달리 실질적인 인적 구성 변화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높은 보수'에 책임감 요구돼…견제 기능 과제
게다가 은행연합회가 공개한 지난해 임직원 및 사외이사 연봉 자료에 따르면 KB금융의 사외이사 평균 연봉은 8876만원, 신한금융 9258만원, 하나금융 8060만원, 우리금융 7189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평균 보수는 약 8300만원 수준이다.
이처럼 사외이사의 높은 보수 수준을 고려하면 사외이사가 단순 자문을 넘어 경영진을 견제하고 내부통제를 점검하는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금융사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형식적 기구'가 아닌 실질적 통제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인선 구조를 보면 금융지주들이 강조하는 독립적 추천 절차와 달리, 신규 선임에 변화가 집중되는 반면 재선임을 통해 기존 인적 구성이 유지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문성 보강이라는 측면에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이사회 구성의 근본적 다양성과 독립성 측면에서는 구조적 변화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이번 사외이사 개편은 법률·소비자보호·AI 중심의 기능적 보강에는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학계 편중 구조 탈피와 실질적 견제 기능 강화라는 핵심 과제는 여전히 남겼다. 금융권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형 과제'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문성 보강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진전이 있었지만 사외이사 구성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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