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생각]
1987년 민주화 직후 노조 요구 분출
노태우 대통령 시절 고물가로 이어져
김영삼 대통령, 취임후 한국병으로 규정
노동개혁 나섰다가 반발에 체력 소진
삼성전자 노조에서 시작된 노조들의 성과급 요구는 40년전 민주화 시대의 노조 운동을 연상시키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가 지난 4월 23일 개최한 '투쟁 결의대회’./장련성 기자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자동차·조선·IT(정보기술) 등 다른 분야로 확산하는 요즘 모습은 40년 전 민주화 시대의 노사 관계를 연상시킨다. 당시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노사 관계를 제대로 중재하지 못한 탓에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이 한국경제가 감당할 수준을 넘었고 결국 한국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됐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직선제를 천명한 1987년 6·29 선언은 민주화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다. 이듬해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자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경제에도 민주화가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됐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노동 분야에 가장 먼저 변화가 찾아왔다. 노사 분규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과거와 달리 정부 개입보다는 노사의 자율적 해결이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 바람의 대가는 높은 물가상승률이었다.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어느 정도 물가 상승은 불가피했지만 노 대통령 임기 초반에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전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2~3%대였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8%로 뛰어올랐다.
국회는 1982~1986년 4%대였던 정부의 추곡수매가격 인상률을 1988년 16%, 1989년 14%로 끌어올렸다. 부동산 가격도 폭등했다. 전국 땅값은 매년 20~30%씩 올랐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민주화 바람과 함께 노조의 요구도 매우 거셌다. 사진은 집무중인 노 대통령./대통령기록관
임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1987년 10.1%, 1988년 15.5%, 1989년 21.2%였다. 임금이 오르는데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현저히 약화됐다. 게다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하락하면서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안으로 노사 분규와 반기업 정서에 시련을 겪는 동안 수출 경쟁국인 일본과 동남아 기업들은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수출 시장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갔다. 한국 기업들은 견디다 못해 동남아시아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반에 물가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일단 풀린 고삐는 다시 죄기가 쉽지 않았고, 부담은 후임자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김영삼 대통령의 ‘한국병’ 치유 시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고임금으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과 마주해야 했다. 기업들은 해외투자 명목으로 한국을 탈출하고 있었다. 성장률이 하락하는 와중에 물가는 다시 오르고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파업은 잦았고 임금은 계속 상승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경제는 고비용과 저효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김 대통령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에 ‘한국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행히 1994~1995년의 반도체 특수가 한국병을 잠시 가렸다.
김영삼 대통령은 고비용 저효율의 '한국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사진은 청와대에서 전화통화하고 있는 김 대통령./e영상역사관
김 대통령은 개혁을 서둘렀다. 정부개혁, 사법개혁, 금융개혁, 노동개혁을 밀어 붙였다. 그 가운데 노동개혁이 가장 힘겨웠다. 1996년에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정리해고, 대체근로 허용, 퇴직금 제도 폐지 등의 개혁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조의 총파업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떨어뜨렸다.
여야 합의안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당초 의도가 많이 퇴색했고 정부도 지친 나머지 체력이 쇠퇴해 국정 운영이 어려워졌다. 노동개혁이 그만큼 난제였던 것이다.
김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에는 반도체 호황의 마스크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자 대기업들이 하나둘씩 부도가 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의 고갈된 기초체력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 외환위기의 바람이 북상해 한국을 강타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
40년 전의 사례가 던져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로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때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바람에 한국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부동산 개혁보다 어려운 노사 문제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사 문제에서 노태우·김영삼 대통령보다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노조가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어서 설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대통령이 지지 기반 강화를 위해 노조의 요구에 쏠릴 수도 있다.
노사 문제는 국정 동력을 빼앗을 정도로 파괴력이 있고 한번 진행되면 경제위기가 오기 전에는 되돌리기 어렵다. 이 대통령의 선택과 리더십에 따라 이번 노사 문제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후대에 넘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