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고 전자주주총회 도입·집중투표제 의무화·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주주 보호 장치가 강화되면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주주 보호와 지배구조 개선을 겨냥한 법 개정이 실제 주총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첫 무대가 이달 정기 주총이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기금투자자의 의결권 강화에 대해 짚어봤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글로벌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주간한국 강민혜 기자]
‘슈퍼 주총주’… 기관 의결권 영향력 확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12일 ‘상법개정 취지 적극 반영’을 내걸고 의결권 행사 강화 방침을 공개했다. 실제 의결권 행사 내역도 빠르게 누적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국내 의결권 행사내역’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공시 건수는 총 720건이다. 이같은 변화는 이른바 ‘슈퍼 주총주’와 맞물려 더 큰 파급력을 갖는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상장법인 2727개사 가운데 이달 넷째 주에만 1573개사가 정기 주총을 연다. 특히 오는 26일 하루에만 740개사가 주총을 개최한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소유주식수는 법인 보유 비중이 46.2%로 개인 35.0%·외국인 18.8%를 웃돈다. 주총 일정이 특정 시기에 집중된 구조에서 기관과 법인의 의결권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지난 19일 제5차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에서 의결한 안건은 판단 기준을 그대로 나타낸다. 국민연금은 HS효성첨단소재·LG전자·포스코퓨처엠·네이버·우리금융지주·POSCO홀딩스·고려아연, 하나·KB·신한금융지주, KT&G·하이트진로·한솔케미칼 등 13개사의 주총 안건을 심의했다. HS효성첨단소재에 대해서는 이사 정원 축소와 임기 변경 정관안이 주주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조현상 후보 사내이사 선임안과 이사 보수한도 안건에도 반대했다.
또한 네이버와 KB금융지주는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에 반대했고, 신한금융지주는 진옥동 후보 선임안에 반대했다. 하이트진로는 정관 변경과 보수한도 안건에 반대했고, 한솔케미칼은 스톡옵션 부여 방식 변경과 자기주식 활용 안건에 각각 반대했다. 반면 LG전자·포스코퓨처엠·우리금융지주·POSCO홀딩스·하나금융지주·KT&G 안건은 모두 찬성했다.
특히 고려아연 사례는 강화된 의결권 행사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연금은 최윤범 사내이사 후보·황덕남 사외이사 후보·박병욱 기타비상무이사 후보 선임안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김보영 감사위원 후보와 이민호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 선임안에는 반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이들 후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자 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미국 합작사 크루서블JV가 추천한 월터 필드 맥랠런 후보와 영풍·MBK파트너스 측이 추천한 최연석·최병일·이선숙 후보에게 표를 절반씩 나눠 행사하기로 했다. 특정 진영에 일괄적으로 표를 몰아주기보다 안건별·후보별로 판단을 세분화한 것이다.
이날 공개된 다른 기업들 의결권 행사내역에서도 흐름은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조현준 효성 회장의 효성티앤씨 사내이사 선임안을 포함해 유상석 일진전기 대표·임준범 롯데칠성음료 ESG본부장에 대한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박상희 LG디스플레이 사외이사·김희웅 롯데칠성음료 사외이사·조웅기 일진전기 사외이사 선임안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던졌다.
산업 가리지 않는 의결권 행사
이 같은 기준은 20일 추가 공개된 의결권 행사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LG에너지솔루션의 재무제표 승인안과 정관 변경안에는 찬성했지만, 이문규 후보 사외이사 선임안과 감사위원 선임안에는 반대했다. 이 후보가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인해 사외이사로서의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에도 보수한도 수준과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춰 과다하다고 보고 반대했다.
롯데정밀화학과 GS리테일에서는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에 대해서만 반대했다. 두 회사 모두 재무제표 승인·정관 변경·사외이사 선임·감사위원 선임 등에는 찬성하고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에만 반대했다. 보수한도 수준이나 보수금액이 경영성과 등에 비춰 과다하다는 것이다.
롯데칠성음료에서는 반대 근거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은 자기주식 보유·처분과 연계된 정관 변경안에 대해 최대주주 등의 찬성만으로 승인될 수 있고, 일반주주 의견을 반영할 방안이 확인되지 않아 주주가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임준범 후보 사내이사 선임안은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 이력을 이유로 반대했고, 김희웅 후보 감사위원인 사외이사 선임안은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사외이사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보고 반대했다. 이사 보수한도 승인안 역시 과도하다고 보고 반대했다.
이외에도 호텔신라는 철회된 정관 변경안은 미행사 처리하고, 재무제표 승인·사내이사 선임·이사 보수한도 승인안에는 찬성했다. 다만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안에는 김현웅 후보가 회사와의 이해관계로 인해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보고 반대했다.
결국 올해 정기 주총의 의미는 분명하다. 상법 개정으로 정비된 주주 보호 원칙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금투자자의 의결권을 통해 실제 기업 안건 심사 기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사 선임·보수 한도·정관 변경 등 핵심 안건에서 동일한 기준이 작동하고 있으며 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은 개별 기업을 넘어 시장 전반의 지배구조 기준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민혜 기자 mine@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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