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브록먼 오픈AI 사장. 1987년생인 그는 2015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와 함께 오픈AI를 공동 창업했다. 연합뉴스
우주항공 기업 스페이스X, 생성형 인공지능(AI) ‘클로드’ 개발사 앤스로픽과 함께 올해 기업공개(IPO) 대어로 꼽혔던 ‘챗GPT’ 개발 기업 오픈AI가 상장 작업을 내년으로 미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장 이후 이어진 스페이스X의 주가 흐름이 썩 좋지 않아 IPO 시장의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오픈AI는 여전히 적자의 늪에 허덕이고 있고, 올해 경영 목표도 줄줄이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오픈AI의 자금 조달 계획 변경은 AI 인프라(기반시설) 수요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반도체 관련주 주가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최대 1조 달러(약 1540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의 구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상장 작업이 지나치게 미뤄질 경우 이 회사에 막대한 돈을 댄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도 자금 상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픈AI ‘IPO 연기설’에 美반도체주 줄하락...한국 삼전·SK하닉과 일본 소뱅도 급락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엔비디아가 1.64% 하락한 것을 비롯해 구글 모회사 알파벳(-1.84%), 브로드컴(-3.67%), 마이크론(-6.69%), AMD(-2.06%), ASML(-2.53%), 인텔(-3.42%),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6.16%), 램리서치(-5.66%), 샌디스크(-10.46%) 등 대다수 반도체주들이 크게 내렸다. 이에 따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5.29% 빠졌다. 이는 애플(3.14%), 마이크로소프트(5.71%), 아마존(2.50%), 스페이스X(0.15%), 테슬라(1.22%),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1.36%) 등 비(非)반도체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의 주가가 이날 올랐음에도 나스닥종합지수(-0.24%)가 5거래일 연속 하락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날 반도체주를 끌어내린 최대 재료는 오픈AI가 IPO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였다. 막대한 자금 조달을 꿈꾸는 오픈AI가 IPO를 미룰 경우 반도체 등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속도도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빠르게 번졌다. 이 소식은 앞서 26일
삼성전자(005930)
(-5.30%),
SK하이닉스(000660)
(-8.36%)와 코스피지수(-5.81%)의 급락에도 영향을 미쳤다. 같은 날 일본 도쿄 증시의 소프트뱅크그룹 주가는 이 보도로 무려 12.53%나 폭락했다.
NYT는 25일 복수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당초 올트먼 CEO가 올 3∼4분기 상장을 염두에 두고 투자은행(IB)과 변호사 등의 자문을 구하다가 최근 자세를 고쳐 잡았다고 보도했다. 일론 머스크 CEO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최근 역대 최대 규모 IPO로 총 857억 달러(약 131조 원)를 조달했지만, 정작 12일 상장한 이후에는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며 투자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판단에서다.
NYT에 따르면 오픈AI의 자문단은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1조 달러의 기업가치를 고수한 채 내년에 상장하거나, 몸값을 낮춰 조기 상장하는 두 방안을 올트먼 CEO에게 제시했다. 이에 올트먼 CEO는 기업가치 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실상 상장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 스페이스X의 주가는 상장 직후 3거래일 동안은 연속 상승하며 201달러 위로 올라섰다가, 이후에는 사흘 연속 하락하며 15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그 다음부터는 150달러대에서 반등하지 못한 채 26일에도 153.23달러에 머물렀다. 이는 공모가인 135달러보다 겨우 13.5% 높은 수준이다. 자칫 IPO 후발주자인 오픈AI나 앤스로픽의 흥행 여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성적표이기도 하다.
스페이스X는 23일 250억 달러(약 38조 원)어치의 회사채까지 발행하며 주가에 한번 더 부담을 줬다. 주문액은 850억 달러(약 130조 원)에 달했으나, 수요는 위험도가 낮은 단기물에만 집중됐다. 스페이스X는 이 돈으로 200억 달러 규모의 브리지론(단기 임시 대출) 등을 우선적으로 갚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처럼 만년 적자 회사인 스페이스X의 이 같은 행보는 AI 기술기업 전반에 대한 월가의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스페이스X 주가 부진 여파...‘제미나이’ ‘클로드’ 약진에 ‘챗GPT’ 경영 목표도 줄줄이 차질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AP연합뉴스
사실 오픈AI의 내년 상장 추진설이 NYT 보도로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지난 10일에도 올트먼 CEO가 이달 초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회사의 상장 시점을 “내년 안”이라고 말했다는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의 보도가 있었다. 오픈AI가 이달 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IPO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이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보험 성격의 조치일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오픈AI와 IPO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하는 앤스로픽은 이보다 앞선 지난 1일 신청서를 냈다. 올트먼 CEO는 당시 직원들에게 “여러 요인으로 인해 더 빠르거나 늦을 수도 있지만, 지금 신청서를 제출하면 우리가 상장을 앞당기고 싶을 때 선택권을 갖게 된다”며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개선될 수 있는) 재귀적 자기 개선(RSI)에 빠르게 도달할수록 IPO를 미루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픈AI의 상장 연기 판단이 꼭 스페이스X의 주가 흐름에서만 비롯된 것도 아니다. 본질적 요인은 오픈AI의 부실한 실적 그 자체다. 오픈AI는 올해 연 매출을 지난해 거둔 130억 달러의 3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현 월 매출은 20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용자 수 증가 추세도 완만해져 주간활성이용자(WAU)가 지난해 말 목표치였던 10억 명에 아직도 이르지 못하고 9억 명대에서만 맴돌고 있다.
오픈AI의 사세가 흔들리게 된 계기는 지난해 11월 18일 텐서처리장치(TPU)를 활용한 구글의 ‘제미나이 3.0’ 출시와 올해 앤스로픽의 약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픈AI는 기업용 시장에서 앤스로픽의 클로드에 뒤지며 올해 월 매출 목표 달성에 여러 차례 실패했다. 디인포메이션은 사라 프라이어 오픈AI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올초에 이미 일부 동료들에게 막대한 지출과 절차적 문제를 들며 연내에 상장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설상가상 앤스로픽은 지난달 진행한 시리즈H 투자 라운드에서 9650억 달러(약 1486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오픈AI가 올 3월말 기록한 8520억 달러를 추월했다.
오픈AI는 26일 공개한 새 AI 모델 ‘GPT-5.6’도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일부 기관에만 제한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GPT-5.6은 최상위 모델인 ‘솔’을 비롯해 ‘테라’ ‘루나’ 등 세 가지로 나눠 개발됐다. 오픈AI는 이들 모델을 정부와 공유된 ‘신뢰할 수 있는 협력 기관’에 먼저 제공하기로 했다면서 일반에 배포하는 시기는 몇 주 뒤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당분간 새 모델 접속 대상을 오픈AI가 아니라 정부가 승인하게 된 셈이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올트먼 CEO는 백악관 국가사이버국(ONCD)·과학기술정책실(OSTP)과 GPT-5.6 출시 시기를 조율했지만, 결국 “다른 기관들의 승인 없이는 출시하지 말라”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의 경고성 전화를 받았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일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른 조치다. 행정명령은 AI 기업이 새 모델을 공개하기 최대 30일 전에 정부에 먼저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 상무부도 12일 앤스로픽의 ‘미토스 5’와 ‘페이블 5’가 국가 안보 위험을 초래한다며 이들에 대한 수출 통제 지침을 내렸다. 오픈AI는 “사용자·개발자·기업·보안 전문가들이 최고의 도구를 활용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정부 승인 절차가 장기 표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앤스로픽과의 경쟁, 中 AI 부상 등도 과제...손정의, 자금 압박 받을 수도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AP연합뉴스
중국의 AI 모델 기술이 오픈AI의 바로 아래까지 따라온 점도 위기 요인이다. 특히 중국의 Z.ai(옛 지푸AI)가 최근 내놓은 ‘GLM-5.2’의 경우는 앤스로픽의 첨단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갖추고도 6분의 1 수준의 사용료만 받고 있다. 25일 NYT도 중국의 AI 모델이 각종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 때문에 미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2월 딥시크가 쏘아올린 중국발(發) AI 돌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국 AI의 도전는 오픈AI가 상장 시기를 미룰수록 기업가치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물론, 오픈AI도 기업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24일에는 지난해부터 브로드컴과 개발한 AI 모델 추론 특화 자체 반도체 ‘할라페뇨’를 공개했다. 오픈AI는 이 반도체를 올해 말부터 실제 데이터센터 등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픈AI는 이 칩이 기존 AI 반도체에서 병목으로 작용했던 데이터 이동을 줄이고, 연산·메모리·네트워킹 자원의 균형을 맞춰 이론상 최대 성능에 근접한 활용도를 달성했다고 주장했다. 이 반도체는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양산한다. 그레그 브록먼 오픈 AI 사장은 “세계는 연산 기반의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며 “할라페뇨는 연산 자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개인·기업에 더 빠르면서 더 안정적이고 더 저렴한 AI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오픈AI는 또 18일에는 제미나이의 공동 개발자인 노엄 샤지어 구글 엔지니어링 부사장도 영입했다.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의 확장현실(XR) 기기 ‘비전 프로’와 스마트 안경 부문을 이끌던 폴 미드 부사장도 다음주 오픈AI의 하드웨어 부문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월가는 상장 연기와 관련해 오픈AI에 대규모 투자금을 넣은 손 회장에게도 주목하고 있다. 상장 시기가 너무 미뤄질 경우 브리지론 등 각종 대출 상환 압박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 현재 손 회장은 오픈AI와 손잡고 5년간 5000억 달러(약 770조 원)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은 오픈AI에 650억 달러(약 100조 원)가량을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는 오픈AI를 지원할 목적으로 지난해 10월 58억 달러어치가 넘는 엔비디아 지분 3210만 주까지 전부 매각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같은 해 12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열린 국제금융회의 ‘퓨처 인베스트먼트 이니셔티브’에 참석해 “엔비디아 주식을 사실은 한 주도 팔고 싶지 않았는데, 오픈AI 등에 투자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았다”고 토로했다.
손 회장은 닷컴버블(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산업 거품 현상) 시기에도 전 세계 1위 부자 자리까지 올랐다가 거품 붕괴 이후 전 재산의 99%를 날린 경험이 있다. 손 회장은 이후 통신·인터넷 기업 투자로 오뚝이 같이 일어서서 중국 알리바바, 한국 쿠팡(본사는 미국)의 성공 신화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손 회장은 이달 24일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그룹 정기 주주총회에서 “초인공지능(ASI)의 진화로 1명이 1000명분의 일을 하게 된다”며 “나는 해낼 것이고 은퇴할 여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뛰어넘는 ASI의 실현을 미국 오픈AI와 함께 추진하겠다”며 “이제 막 시작한 AI 혁명에 대해 ‘버블(거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오픈AI의 상장 시점이 얼마나 미뤄질지는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관건은 앤스로픽의 상장 전략이다. 만약 앤스로픽이 1조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먼저 인정받아 증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올트먼 CEO의 마음은 급해질 수 있다. 반대로 앤스로픽의 IPO가 예상보다 흥행하지 못하거나 이 회사 역시 상장 시점을 늦춘다면, 오픈AI의 증시 입성은 더 늦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챗GPT가 생성형 AI 시장에서 더 나은 위상을 차지하고, 오픈AI가 확실한 수익 모델을 수립하는 작업이 선결돼야 한다. 클로드, 제미나이뿐 아니라 중국 AI와의 격차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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