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한영숙 1366충북센터장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여성들은 김소사, 이소사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을 발표하였다. 여성도 배우고(교육권), 일하고(직업권), 정치와 세상의 일에 참여할 권리(참정권)가 있다는 선언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요구가 그 시대에는 참으로 파격적이고 담대한 외침이었다.
그로부터 128년이 흐른 지금, 여성들은 배우고, 직업을 선택하고,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여권통문이 품었던 바람은 모두 이루어진 것일까? 오늘날 여성들의 삶은 어떠한가?
여성긴급전화 1366의 수화기는 오늘도 가정폭력뿐 아니라 교제관계 안에서의 폭력과 통제, 이별 후 이어지는 스토킹, SNS를 통한 감시와 협박, 불법촬영과 유포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로 고통 받는 이들이 보내오는 절박한 도움 요청을 듣는다.
여전히 누군가는 친밀한 관계 또는 친밀한 관계였던 사람에게 폭력과 죽임을 당하고 통제받으며, 공포와 두려움으로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이 안전한 공간이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 원하지 않는 관계를 안전하게 끝낼 수 있는 삶이다. 어렵게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많이 힘들었겠다. 말해줘서 고맙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라고 물으며,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곁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쉽게 허용한다. “너무 사랑해서”, “걱정돼서”라는 이유로 위치를 확인하고, 만나는 사람과 가는 곳을 통제하며, 상대의 거부를 무시한 채 반복적으로 피해자의 일상을 침범하고 공포를 주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권리를 침해하는 명백한 폭력이다.
젠더폭력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나 일탈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젠더폭력을 구조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은 폭력의 책임을 분명히 가해자에게 묻는 동시에, 폭력이 반복되고 지속되도록 만든 사회적 조건을 함께 살피고 바꾸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통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해자에게 “왜 폭력을 행사했느냐”고 따져 묻고 “그 행동을 중단하라”는 말보다 피해자에게 “왜 그런 사람을 계속 만나냐!”, “왜 헤어지지 않느냐!”는 사회적 시선이 폭력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128년 전 여권통문에 담긴 간절한 외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내 삶을 내가 선택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늘날에도 여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보면, 그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여성이라는 이유로 밤길을 무서워하지 않을 권리, 원하지 않는 관계를 끝낼 권리, 이별했다는 이유로 스토킹당하지 않을 권리, 신체를 찍히지 않을 권리, 유포되지 않을 권리, 폭력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성평등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으며 안전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 일상이 더 이상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아니라 모두에게 당연한 삶이 되는 것,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역량에 따라 기회를 얻는 것, 그것이 128년 전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가 바라는 성평등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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