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대기 자금으로 여겨지는 투자자예탁금이 2개월 반 만에 120조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개인투자자의 매수 여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물량을 개인이 사실상 받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실탄’으로 통하는 예탁금이 줄어든 점은 시장에 적지 않은 경계감을 주고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119조9264억원으로 집계됐다. 3거래일 연속 감소세를 보인 끝에 120조원을 밑돈 것으로, 예탁금이 120조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4월 16일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달 4일의 139조6947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새 약 20조원이 줄어든 셈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증권사 계좌에 입금돼 있지만 아직 주식 매수에 쓰이지 않은 현금성 대기 자금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개인투자자들의 대표적인 매수 여력, 이른바 ‘실탄’으로 해석해 왔다. 공모주 청약 열풍이나 증시 상승기에는 늘고 급락장에서는 빠르게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예탁금 감소는 외국인 매도에 대응한 개인 매수의 결과로도 풀이된다. 6월 3일부터 이달 2일까지 한 달 동안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5조594억원어치를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55조2535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사실상 물량을 받아냈다. 외국인이 팔고 개인이 사는 구도가 이어지는 동안 예탁금이 줄어든 것은 대기 자금이 실제 매수에 투입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감소 속도다. 예탁금은 지난해 말 87조8290억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30조원 이상 많은 수준이지만, 최근 3거래일 동안 12조원 넘게 줄어드는 등 감소세가 가팔라졌다. 시장을 떠받치는 개인의 추가 매수 여력이 점점 얇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예탁금 감소만으로 곧바로 개인 매수 여력 약화를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예탁금이 기본적으로 주가와 동행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어, 상승기에는 늘고 하락기에는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예탁금 감소만을 근거로 개인 자금이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도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신승진 투자정보팀장은 "최근 예탁금 감소를 위험자산 선호 심리 약화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근 시장 급락 과정에서 대기 자금이 저가 매수로 유입된 결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즉 예탁금 감소가 반드시 비관적 신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개인 자금은 최근 변동성 장세 속에서도 특정 종목과 상품에 공격적으로 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주 ETF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개인 매수세가 집중됐다. 6월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개인은 KODEX와 TIGER의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를 각각 7703억원, 385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두 상품만으로 1조1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삼성전자 레버리지 ETF에도 자금이 몰렸다. 같은 기간 KODEX와 TIGER의 삼성전자레버리지는 각각 4327억원, 2165억원어치 순매수됐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관련 4개 레버리지 ETF의 개인 순매수 규모를 합치면 약 1조7500억원 수준으로, 이번 주 전체 ETF 시장 개인 순매수 3조8478억원의 절반가량에 해당한다.
이를 제외하면 KODEX 레버리지, KODEX 200타겟위클리커버드콜, KODEX 코스닥150레버리지 등이 뒤를 이었다. 개인 자금은 변동성이 큰 반도체 대형주 레버리지 상품과 지수형 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되고 있다는 말이다.
관건은 앞으로의 자금 흐름이다. 예탁금 감소가 일시적인 저가 매수 소진에 그친다면 개인은 다시 대기 자금을 쌓으며 매수 여력을 회복할 수 있다. 반대로 예탁금 감소가 장기화하고 자금 쏠림까지 심해질 경우, 국내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개인 투자자 기반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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